2019년 김장, 청각을 갈아 넣지 않았다.

아마귀차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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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1. 00:55

고모님 손맛이 아니면 이제 김치 먹기가 좀 어렵다.

  갑작스레 시작된 올 김장은 무사히 잘 끝났다. 조카들이 고모님을 도와 배추를 잘(?) 절여놓은 덕에 양념만 만들어서 장장 8시간 만에 100포기를 끝냈다. 특히나, 다른집보다 고모님 김치는 유별나게 맛있는데, 서울이나 기타지역에서 김치를 맛보면 한 통만 팔라고 하시는 분들이 수두룩 할 정도로 맛이 좋다. (10통을 가져온 우리집도...1년 먹을 식량인데...)

 


  양념을 준비하기 위해 재료를 만드는 도중 정말 마주치기 싫은 벌레같은 해초류를 만났다. 청각이다. 청각을 김치에 넣는 지역이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으나, 전남 광주지역에서는 어지간하면 다 들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해초류 특유의 향이 좋아서 넣는 경우가 많은데, 잘게 다지지 않으면 벌레처럼 거무죽죽한 긴 해초가 김치와 함께 딸려온다. 

 

  이전에는 청각이 길죽한게 징그러워서 갈아서 넣었는데, 믹서기를 망가뜨릴 정도로 얇은 섬유질들이기 때문에 올해는 오랜만에 잘게 다져서 넣었다.

전남 지역의 김치를 보면, 가끔 애벌레 비슷한 해초류가 들어간다. 그놈들이 청각이다. 향이 좋아서 넣으신다 그랬다.
김치 속으로는 배, 사과, 고춧가루, 다진청각, 마늘, 생강, 무, 멸치액젓, 새우젓(사이즈별로 3종) 등등이 투하되었다.

  고춧가루를 풀어헤치고, 젓갈과 다양한 재료들이 잘 섞여 양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시험삼아 굴을 넣어 김치양념을 버무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사진 몇컷만 찍고 곧바로 투입되어 쪼물딱쪼물딱? 김장에 투입되었다.

 

  갓 버무린 김치에 깨를 솔솔솔 뿌리고, 된장푼 육수에 삶은 수육을 꺼내 댕강댕강 썰었다. 이날 아침이자 점심은 수육이다.

 

수육과 김치, 그리고 무채를 양념에 버무림

 해남에서 가져온 배추는 속이 상당히 실했고, 부드러웠다. 수육에 김치 한 줄기를 돌돌말아 맛있게 먹다보니, 공기를 2그릇째 비웠다. 매년 11월 말~12월 초는 김장 때문에 초 긴장상태에 돌입하지만, 막상 양념까지 준비가 되고 버무리기 시작하면 그 수많았던 배추는 어느샌가 배추가 되어있고, 결국 수십통의 김치냉장고 용기에 들어가 있더라...그 중에 가장 클라이막스는 새 김치에 수육을 먹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굴과 갓 만든 김치의 비쥬얼은 남다르다.

 

굴이 1/3 김치와 양념이 나머지 2/3이다. 해산물을 싫어하지만, 공판장에서 바로 올라온 물건들은 먹는다.


 

  1박 2일 일정의 김장을 후딱 마무리 짓고, 아버지 차에 김장김치 20통을 실었다. 고모님 김치를 맛보기 위해 사방에서 한통만 달라고 하니...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판매를 해야한다면, 한 통에 10만원은 가뿐히 넘을 금액이지만, 다들 싸게 잘 가져간다. 들어간 양념과 배추값만 해도 2~300만원이 훌쩍 넘는 대 행사의 결과물이니 만큼, 한해 또 맛있게 잘먹어야겠다.

 

  오픈마켓 업무 때문에 하루 먼저 서울에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배추나르고 버무리고 한 덕에 온몸이 비명을 질러서인지 버스안에서도 마냥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럼 뭐하나. 아이유 콘서트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으니 노래나 들어야지. 블루밍은 정말 레알이다. (잘 뽑았다는 뜻이다.) 

  두서없는 김장 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